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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명성황후 장례절차 시간순 정리 | 왕실의궤

쏭이양 2006. 8. 9. 05:48
 명성황후 국장 시간순 정리


-1895년 10월 8일 : 명성황후 시해


-1895년 10월 10일 : 김홍집은 황후를 서인으로 폐위 - 황후가 친당을 행사하여 황제의 총명을 막고, 매관매직한다. 는 이유.

그 다음날 태자가 반대(순종) 하며 저항하자 서인에서 빈으로 승격시킴.


-1895년 11월 26일 : 김홍집내각은 폐후 조칙 취소, 왕후로 복위.


* 춘생문사건-1895년 11월 27일 고종을 미국공사관으로 모시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사전누설되어 실패. 가담자들 12월 20일 처벌.


-1895년 12월 1일 : 김홍집내각은 공식적으로 왕후 사망발표 (사망한지 55일만)


고종은 김홍집의 비호세력을 총호사(국장 책임관) 임명(조병세, 이재완, 조병호)

(사망을 발표한 이상 장례를 치루기 위하여 윤석우가 매장한 몇 안되는 유골을 다시 발굴하여 회를 발라 억지로 시신을 만듬)


12월 3일 시신 목욕, 습, 소렴

12월 5일 대렴 후 재궁에 넣어 입관

12월 8일 성복을 마침

12월 13일 산릉을 현종의 숭릉(現 동구릉의 하나) 부근으로 정함.

12월 29일 산릉 공사 시작

           산릉에 재실, 정자각, 수도각등이 건설되고, 석물도 준비되어 운반함.

           계획대로라면 1896년 4월초에 장례를 마치게 되어있었음.


-1896년 2월 11일 : 아관파천

이날 고종은 을미지변을 방조한 김홍집, 유길준, 정병하, 조희연을 을미사적으로 지목하여 체포령을 내림. 고종의 운신이 자유스러워지면서 장례식도 고종이 주도하기 시작. 김홍집 내각이 무너지면서 자연히 국장도 중단되었음.(1896년 3월 10일 공사중단 조칙 발표)

‘복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세자의 지론과 여론의 대세로 흉적에 대한 복수를 하고 나서 장례를 치르기로 방침을 세움.


-1896년 8월 23일 : 고종, 경복궁의 빈전과 혼전을 경운궁으로 이전지시 (9월 4일 시행)


-1896년 11월 2일 고종은 조병세, 이재순, 김종한 등에게 산릉 조사 명령

산릉 조사단은 -12월 9일 27개처의 산릉 가능지를 고종에게 조사 보고,- 보고 내용 (양주 안감천/창릉의 왼쪽 봉우리/양주 회암/ 교하군 아곡/ 장릉/구기등 7개처가 길지라고 보고)

12월 31일 고종 황제, 재조사 명령(연운과 산운이 맞지 않음). 이후 연희궁과 청량리를 추천

-1897년 1월 3일 최종적으로 청량리가 선정 (4월 5일에 청량리 홍릉에 안장하기로 결정->그러나 4월로 예정된 장례식은 그 이후 몇 차례 연기됨) 김홍집 내각에서 결정한 황후의 시호, 능호, 사당의 전호도 새로 바꿈.


-1897년 5월 6일 : 동구릉 산릉조영 중 잔존유해 발견으로 명성황후 산릉조영은 문제가 잇다하여 명성황후 산릉조영은 2차 연기 됨)

칭제(고종이 황제로) 요구 상소로 3차 연기

사례소(역대임금 치적 정리 기구)설치로 4차 연기

연호(실제적인 황제 등극의 준비 및 황제 등국 후 명성황후의 명예회복을 염두에 둠) 때문에 고종은 광무로의 등극을 연기 함(5차 연기가 됨)


-1897년 10월 12일 : 고종, 환구단에 나아가 황제즉위.

다음날, ‘대한’ 국호 선포하고 14개조 시정책 발표


-1897년 10월 15일 명성황후의 국장이 결정됨. (홍릉의 산릉 공사가 급진전)


-1897년 11월 21일 발인 -> 다음날 아침 진시(오전8시경) 하관

( 2년 2개월간 이어진 장례 마침 )

고종 황제는 상여가 떠날 때 경운궁 인화문 밖에서 곡하면서 영구를 배웅하고, 오후 2시에 외국 공사들과 함께 홍릉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하관을 마친 다음에 황태자와 함께 궁으로 돌아옴.


- 1897년 11월 22일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 편찬 시작 ~ 1898년 5월 20일 완료


- 이후 홍릉의 석물에 계속 문제가 발생하여 몇 차례 중수를 거쳐 1900년에 보수작업이 완료되었고, 홍릉에 풍수상 문제가 있다 하여 지금의 남양주시 금곡동 홍릉으로 이전 준비하였으나 노일전쟁으로 중단.


-1919년 1월 21일 고종 황제가 승하하자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홍릉을 옮기고,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합장.

출처 : 명성황후 장례절차 시간순 정리 | 왕실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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