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포토

[스크랩] <가을에 만나보는 시> 내가 죽거든

쏭이양 2006. 11. 15. 06:20

<가을에 만나보는 시>  내가 죽거든

 

 

- ! 가을인가?

 

집 앞의 ANACAFE (Asociacion Nacional de Café 전국 커피 협회)라는 큰 건물 옆 넓은

정원 한 귀퉁이에 언제부터인가 코스모스 한 무더기가 피어 그 가녀린 자태를 바람에 한들

거리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차를 타고 지나기 때문에 내 눈에 들키지 않았겠지만 아침 저녁

으로 저희들 부부가 나란히 느긋한 걸음으로 산책을 한답시고 그 건물 주변을 네 다섯

바퀴쯤 도는데 어느 날인가 갑자기 아내가 저기 코스모스가 피었다고 반겨하는 바람에

새삼 오랫동안 잊고 지났던 가을의 소녀 같은 가녀린 꽃 무리와 만났고 이 지음은 시들고

새로 피고 하면서 차츰 스러져가는 코스모스와의 눈맞춤에 세월을 세어봅니다.

일년 열두 달 매양 봄만 같은 따뜻한 날씨 속에서 살다 보니 언제 고국의 가을 하늘을 느껴

보기나 했던가 싶습니다.  그만큼 이민생활이 고단했었던 탓이겠지요.

 

엊그제, 지난 9 21일 우리 부부는 과테말라의 한 유력한 야당 당수이자 국회의원이고

나와 몇 가지 사업 동반자이기도 한 마리오 에스뜨라다 국회의원의 부인 묘소를 꼭 3개월

만에 찾았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621 46세를 일기로 사랑하는 가족 품을 떠나 영원한 안식의 세계에

들어간  에스뜨라다 람 여사는 그 핏줄이 중국인의 후손으로 동양계였는데 하여튼 그 부인

묘소를 찾은 우리는 애써 힘들여 사온 흰색과 노란색 국화 다발을 빈 꽃병에 한아름 꽂아

놓고 돌아 왔습니다.  

 

과테말라는 좀 특이한 나라입니다. 좀체 국화를 사기가 쉽지 않은 나라입니다.

온실재배가 없었던 옛 날에는 국화를 가을의 여왕이라 불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이 곳

과테말라의 많은 한인교회들이 강단 장식을 하려고 해도 국화는 화분에 심겨진 채로 대여를

할지언정 꽃으로 팔지 않으려는 국화재배업자의 지나친 국화 사랑의 횡포(?)를 보게 됩니다.

국화가 지닌 품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아무렇게나 퍼지는 것도 싫고

그리하여 자기네 국화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도 싫어한다는 국화의 고귀한 가치 유지를

위한 나름대로의 국화사랑 앞에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재가열녀의 사생결단이여

 

어쩌다 나는 요즘 다시 이렇게 처연한 시를 만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가을의 풍요로움으로도 덮어지지 않는 가슴의 메마름과 나잇살로도 억누르지 못하는 타는

갈증 탓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매화의 사생결단에서 먼저 목축임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매화는 조선 시대 평양의 기생(황해도 곡산 출신)으로 생전에 해주감사와의 연분을 저버리고

홍시유(洪時裕)와 맺은 사련(邪戀)으로 비방 받을 겨를도 없이 젊은 목숨 끊어 사랑하는 님을

향한 순절(殉節)의 길을 택하면서 남긴 사생결단은 소름 끼치도록 서슬이 푸르기만 합니다.

 

죽어 잊어야 하랴 살아 그려야 하랴
죽어 잊기도 어렵고 살아 그리기도 어려웨라
저 님아 한 말씀만 소라 사생결단 하리라
매화

그리도 그리워서 미친 여자가 되어 세상의 안락과 호사도 다 버리고 찾아 왔던 사람이 죽어

누웠는 그 자리에서 매화는 사생결단을 내리고 스스로 꽃다운 청춘을 버려 목을 매고 맙니다.


 다음날 매화의 시체가 홍시유의 무덤 곁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토록 아껴 주던 어윤겸을

배반하고 홍 사또에게 달려 온 것을 비방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뒤늦게나마 그를 위해 순절한

것을 두고 세인들은 매화를 '재가열녀(再嫁烈女)라고 불렀습니다.

 

 

비록 두 사람의 남자의 품에 안겼지만 열녀라고 불려진 기생... 매화

 

 

- <황진이>의 유언 내가 죽거든

 

며칠 전에 유보옥의 < 내가 죽거든 > 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초절한 관조와 허무에 까지

차라리 미치는 싯귀(詩句)에 섬뜩하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또 언뜻 낯이 익은(?)

싯귀(詩句)에 또 약간은 얼떨떨해 졌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황진이의 유언에 금수도 관도 쓰지 말고  옛 동문 밖 물가 모래밭에 시신을 내버리라는 말이

기억난 것입니다.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우리 여류시인 중에 그 삶의 화려함이나 사랑의

애절함이나 세태(世態)를 초월함에 있어서나 또 죽음에 임하여서 보여준 태도에 비추어

황진이만한 기녀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님, 최경창의 묘소를 지키고자 스스로

얼굴에 칼자국을 남기고 가슴에 묘막 지었던 홍랑의 9년 시묘살이 또한 여인의 대단한 삶의

마감임에 틀림 없습니다.

 

황진이가 서른 여섯, 자신의 삶이 끝날 즈음 <어우야담>에 남긴 글입니다.

"
난 생전에 화려한 것을 좋아했으니
죽은 후에는 산에다 묻지 말고 대로변에 묻어주세요."

그리고 또 <숭양기구전>에 남긴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저는 천하의 남자를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자애할 수 없으니,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죽거든 금수도 관도 쓰지 말고 

옛 동문 밖 물가 모래밭에 시신을 내버려서

개미와 땅강아지, 여우와 살쾡이가 내 살을 뜯어먹게 해 

세상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경계 삼도록 해주세요.

 

기생 황진이.

남성 중심의 조선조 중엽의 사회를 숨가쁘게 살아간 그녀를 두고 조선조 대표적인 유학자의 한

사람인 이덕형과 개혁주의자로 일컬어지는 문인 허균, 서로 상반되는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는 두 사람의 평가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나타나는 그녀의 모습을 인용하고 있지만 황진이의 높은

기개와 뛰어난 기예만은 빼어났음을 찬탄하고 있습니다.

  

황진이가 비록 창기이지만 몸치장을 일 삼지 않고 천금을 준다 해도 시정의 천한 족속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덕형(李德馨) : 송도기이(松都記異)-

 

일찍이 산수유람 끝 무렵에 나주에 이른 황진이가 고을 원님과 절도사가 벌린 잔치 자리에서 해진 옷과 때낀 얼굴로 태연스레 이를 잡으며 노래 부르고 거문고를 타도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허균(許筠) : 지소록(識小錄)

 

요즘 어느 개신교 목사님께서 한치의 땅이라도 아름답게 이 땅에 남기기 위하여 죽은 자의

시신을 화장해야 한다는 운동을 벌린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만 일찍이 황진이는

노장(路葬)으로 한치의 땅이라도 아껴야 된다는 장묘문화의 개선을 선각(先覺)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녀는 한 사람의 시인일 뿐만 아니라, 선각자로서 마치 수백 년 후의

사람들이 주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를 미리 내다 보고 있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 <유보옥>의 내가 죽거든

 

내가 죽거든 ----------------------------------유보옥


어느 날 의식이 혼미하고
영원한 휘식이 찾아 들때에

한치의 구덩이도 팔 수고는 필요 없다
.
다만 내가 수고했던 그 땅위에

날 그대로 뉘여다오
.

내 인생의 고독 속으로

날 찾았던 친구들아

나의 친구들아
!
내가 주는 마지막 성찬을 들라

이 음식은

네가 제공했던 너의 살이며

너의 씨앗을 돌려 먹고 자란

새들아 개미들아 파리들아 벌레들아
!
내게 조상을 오라


내 살았을땐

내 귀를 즐겁게 했고

내 세포에 영양을 주어

한때는 사랑을

한때는 눈물을

그리고 그위로 세월은 말없이 흘렀다
.

내 가진것은 비록

살없는 가죽과 뼈다귀 뿐이지만

그것도 너희들에게서 도둑질해

쌓아둔 마지막 유산


날 사랑 하던 사람아

울일이 무어더냐
.
내육신 천갈래로 갈라져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인간사 괴로움도 망각속에 잠들지니.


비록 최근이긴 하지만 시와 산문에서 만나는 그녀의 삶의 편린들은 어찌 보면 혼자 살면서

처연(凄然)해 보일 겨를도 없이 치열(熾烈)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때로는 잠깐씩

처연(悽然)함을 살짝 내비치는 외로움의 그림자를 지닌 여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나마 가까운 사람이 자기의 주검을 봐준 다음날 바로 죽음의 자리에 누워달라는

속내를 감추지 않은 것을 볼 때 ……

자연주의자가 자기자신까지 자연에 돌려주려는 유언 같아 가상하지만
내가 그 유언을 따른다면 나는 엽기적 시신 유기죄로 체포되고 두번째로는 공중위생법

위반으로 가중처벌됩니다. 어찌하오리까?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온

한 시인의 마음씨가 그러했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되겠지요? 라는 어느 길손의

망서림에 유보옥은 얼씨구나하고 내가 먼저 죽어 처리를 해놓고 그 이튿날 오라버니가

죽으면 안될까요? 그러면 법망에도 안 걸릴텐데. 라고 흐멀거리고 있습니다.

- <크리스티나 로젯티>의 내가 죽거든

내 죽거든 내 무덤 머리맡에 장미를 심지 말고 사이프르스 한 그루도 심지말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탁하며 영국 여류시인 크리스티나 로젯티는 삶 속에 있었던 모든 것에 대한

단절(斷絶)과 망각(忘却)을 산 자와 죽은 자가 자연스럽게 꺼냈다가 넣어두었다가 하자고

속삭이고 있습니다.

내가 죽거든 ---------------------------- C.G. 로제티

사랑하는 사람아, 내가 죽거든

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마셔요
.
머리맡에 장미 심어 꽃 피우지 말고

그늘지는 사이프르스도 심지 말아요
.
비를 맞고 이슬에 담뿍 젖어서

다만 푸른 풀만이 자라게 하셔요
.
그리고 그대가 원한다면 나를 생각해줘요
.
아니, 잊으시려면 잊어주셔요
.

나는 나무 그늘을 보지 않겠고

비 내리는 것도 느끼지 않겠어요.
나이팅게일 새의 구슬픈 울음 소리도

나는 듣지 않으렵니다
.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또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 누워 있어 꿈을 꾸면서

나는 그대를 생각하고 있으렵니다
.
아니, 어쩌면 잊을지도 모릅니다
.

로젯티의 호수처럼 넓고 잔잔한 사랑쯤이야 소매자락으로 떨쳐버린 기생 매화의 죽어

잊어야 하랴 살아 그려야 하랴는 한 귀절의 절규는 유보옥의

한치의 구덩이도 팔 수고는 필요 없다.
다만 내가 수고했던 그 땅 위에

날 그대로 뉘여다오
.

차거운 한마디 앞에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를 곱씹는 속 좁은 여인의 부질없는 미련으로

젖혀지고, 옛 동문 밖 물가 모래밭에 시신을 내버리라는 황진이의 자학 앞에 숨을 멈추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날 사랑 하던 사람아
울일이 무어더냐
.
내육신 천갈래로 갈라져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인간사 괴로움도 망각속에 잠들지니


'
저 님아 한 말씀만 하소라 사생결단 하리라 는 기생매화의 사랑의 피 멍든 한 맺힘 조차도

개미와 땅강아지, 여우와 살쾡이가 내 살을 뜯어먹게 하라는 황진이의 완전한 자멸 앞에

망연자실해 지고, 더욱 유보옥의 허무 앞에 초라한 메아리로 울립니다.

홍사또와의 못다한 정분을 태울 수 없어 죽음보다 강한 모진 여인의 단장을 도려내는 기생

매화의 사랑의 한과, 일부종사로 다소곳한 여인의 삶을 살지 못한데 대한 오한(懊恨)

노장(路葬)으로 나마 씻고 싶었던 황진이의 절망과, 생각나면 기억하고 잊고 싶으면 잊으라

는 로젯티의 초월과 그리고 유보옥의 생의 마감 앞에 초절해버릴려는 몸부림들은 오늘날

속도 따위가 미덕인 시대가 감히 다다를 수 없는, 스산한 이 시대에 보석처럼 빛나는 차라리

고귀한 모습들인 것 같습니다.

-이 좋은 계절, 가을에

 

가을에 만나는 대표적인 꽃 코스모스와 국화.

()이 가장 먼저 습작으로 만든 꽃이 바로 코스모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냘프고 어쩐지 흡족하지 못해 신()이 이렇게 저렇게 만들다 보니 종류도 다양해진 듯합니다.
반면 최후의 완성작품이 된 꽃은 국화라 합니다.

그런데도 신의 조화는 무슨 연유로 원래 이 꽃들이 가을에 피게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어쩌다가 이 좋은 계절 가을에,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뜰 안 한 귀퉁이에 서서, 아니 서정주

시인이 그토록 이나 봄부터 꽃 피우기를 기다렸던 함초롬히 그 풍성함을 자랑하는 국화꽃

앞에서, 정말 어쩌다가 그만 나는 처연하게 죽음과 대면하는 사람들과 이 가을에 만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가을에 만나보는 시> 내가 죽거든
글쓴이 : 망향초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