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문화학교 서울이란 예술영화관을 다녔다.
그 시절 <내 이웃의 토토로><추억은 방울방울>과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과 처음 사랑에 빠졌다.
최근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이란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 예전의 열정이 살아났다.
영화를 본지는 일주일이 넘었지만 이제서야 글을 쓰는 이유는 곰삭인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 초등학생 고이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큰 돌을 줍는다.
집에 가져와 물로 깨끗이 씻어내자, 그 안에서 어린 갓파(河童, 일본의 상상 속 동물)가 “쿠!”라는 소리를 내면서 나타난다.
자신이 수백 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었다고 얘기하는 갓파.
고이치와 가족들은 갓파의 이름을 “쿠”로 지어주고, 가족으로 받아 들인다.
고이치의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쿠’ 는 동료들이 사는 갓파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에 고이치는 ‘쿠’를 위해서 갓파 전설이 남아있는 도노(遠野)로 향해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다. 그냥 시네 21에서 가져왔다. 굳이 따로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다.
이 애니메이션은 가지가지로 나를 울리고 웃겼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아이들 대상인것 같지만
실제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점인데,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정말 많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작품이다. 환경파괴와 인간성 파괴
인간소외와 학교 내 폭력, 방송매체의 폐해, 이지메에 이르기까지, 현대일본의 문제점을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내는 감독의 터치에 혀를 내둘렀다.
이 영화는 결국 전인적 치유를 위한 영화적 마법을 휘두른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자, 누군가에게 쓴 소리를 들어 화가 나있거나
철천지 원수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 나를 괜스레 멀리하는 자들 때문에 시험에 들었다면
학창시절 나를 따돌린 친구들 때문에 죽고 싶었다면 이 애니메이션을 볼것.
감히 추천한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슬금슬금 흐르는 눈물을
감추느라 힘들었다. 뭔 남자가 그렇게 감성적이냐고? 아니다. 영화를 보면 안다. 왜 이런지.
오이와 싱싱한 회, 미네랄 워터를 좋아하는 우리의 갓파쿠.
갓파는 물의 정령이다. 일본의 설화 속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다.
17세기 에도시대에서 현대로 부활한 갓파쿠를 통해
작가는 많은 이야기를 건낸다. 한반도 대운하 정책에 대해 전국민적 반대에
부딪치고 있는 대통령에게 이 애니메이션을 권해주고 싶다. 강과 숲, 풀과 나무 이 모든것들이
생육과 번성, 인간과의 조화를 위해 존재하는 신의 선물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될것이다.
자신들이 살던 늪지를 밭으로 개간하려는 사무라이에게 살해된 아빠
갓파쿠는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키웠을 거다. 화석이 된 시간속에서
그 응어리가 과연 얼마나 치유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를 받아준 고이치의 가족들과 함께 갓파는 다시 한번
사랑을 배우고, 공존의 방식을 익힌다. 물론 물의 정령인 갓파에겐 자연은 반드시
돌아가야할 숙제이자 그리움의 대상이다. 갓파가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도노란 곳에
찾아가지만 갓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의 정령답게 수영을 참 잘하는 갓파.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쓰모도 잘하고
물속에서 자신만의 장기(?)인 방귀를 뀌어 헤엄의 속도를 빨리하기도 한다.
이 땅의 신이시여 저와 아빠가 이 땅에서 잠시 사는 것을 용서해주세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 물고기를 이 강에서 잡는 것을 용서해주세요.....갓파의 대사다.
자연을 잠시 빌리는 것으로 알고 익혀온 갓파에겐 소유를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자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삭막한 도시의 풍경, 철과 콘크리트, 시멘트로 지어진 인공낙원에서
과연 인간은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포근한 자연의 형상은 마치 그 속에 기억합금이 있어
영혼을 껴안고 정확하게 어디를 감싸야 할지를 알고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인 듯 보인다.
스스로 있는 것,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힘에 대해 느낀다.
지나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자연파괴가 사실은 우리의 영혼을
가장 악랄하게 부수는 기제임을 이 영화는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 속에서 자라나는 인간도 영혼의 폭력으로 부터 자유롭지 않다.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말을 걸고 싶지만, 항상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이지메로
일과하는 고이치, 결국 이지메는 피해자/가해자의 구분을 명확하게 긋지 않음으로서
우리 모두 폭력으로 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말해준다.
미안해, 아빠 나, 사람친구가 생겨버렸어......갓파가 이 대사를
하면서 눈물이 그렁 그렁 맺힐때 나 또한 울어버렸다. 결국은 사랑이 모든 걸 담지한다는 것을
모든 것을 용서하는 힘의 원천임을. 이지메로 상처받은 여자친구 사요코도 용기를 내어
다시 삶의 무대에 도전하고 갓파쿠도 인간에 대한 기회를 부여한다.
5 년의 제작기간을 가진 작품답다. 영화를 보면서 붓으로 그려낸 그 풍광과
정취에 놀라고 섬세한 연출, 감정의 교환, 이 모든것이 놀랍다. 약한 자에게 군림하고, 강한 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우리시대에 대한 따스한 물음과 경고, 문명 비판과 풍자 정신. <짱구는 못말려>로
스타가 된 하라 게이치의 감독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각인된 작품이다. 많이 울게 될거다.
그리고 환하게 웃게될거다. 이 영화의 특징이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하게 될거다.
'살아줘서 고마와....나도 최선을 다할께' 라고
코이치 너에게 받은 목숨 소중히 할게......
갓파가 자연 속으로 떠나면서 던지는 마지막 대사다.
요즘만큼 삶이 버겹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정신없이 인터뷰에 불려다녔고
글쓰기와 번역에 매진해야 했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허투루한 인성때문에 항상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산다.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고, 아버지는 아프시고. 정부와 거짓언론 때문에
글들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그래도 행복한 일들도 있다.
책은 2쇄를 찍기 위해 들어갔고, 블로그는 점차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고.......
최근 회사 옥상에서 확 뛰어내려버릴까 하는
상상에서, 현실을 회피해보려는 극단의 마음을 조율하고 감싸준 영화.
<갓파쿠와 여름방학을>.....보내게 되어서 행복한 한주였다.
"독자 여러분께 받은 목숨 소중히 할께요......고마와요 내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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