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첫사랑은 도서관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은 첫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에 아파하고, 혹은 그로 인해 성장한다. 당신의 첫사랑은 언제였나?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곤도 요시후미 감독의 <귀를 기울이면>을 보라. 여러분의 기억을 되살릴거다.
누군가 내게 첫사랑이 언제였냐고 물으면 대학 1학년때였다고 말하겠다.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의 스토리와 참 많이 닮아있다.
정확하게 대학 1학년과 군대를 가기 위해 준비하던 2학년 사이, 나는 도서관의 전산화를 경험한 세대다. 도서카드에 학과와 이름을 적어넣던 시절을 뒤로 하고 바코드화된 책을 동시에 경험했다.
경영학을 했지만, 인문과 예술분야를 좋아하던 나로서는 소설칸과 미술칸을 참 많이도 들락날락 거렸다. 신간 소설이 나오면 빌리기 경쟁이 만만치 않았던 시절, 유독 내가 빌리는 책에는 공통된 이름이 하나 올랐다.
그것도 내가 빌리려고 마음 먹은 책을 꼭 먼저가져가는 사람. 그 우연이 한두번이면 모르겠지만, 10회 이상이 넘어가면 약간 화가 나기도 하고 그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진다. 응용통계학과 한소연? "얘는 내가 빌리려는 책 마다 먼저 선점하냐"
김원일의 소설을 빌리다, 결국 그 친구를 봤다. 용감하게 말도 걸었다. 같은 학년의 친구였다. 키가 유달리 큰 친구로 기억한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니, 책은 공감지수를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매체였다.
원래 자신이 좋아하는 걸, 누군가 다른 사람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것 만큼, 친해지는데 유리한 조건이 없지 싶다. 허접한 내 첫사랑 이야기는 여기서 접자. 나머지 부분은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에 소품처럼 써 놓았으니 클릭해 보시도록.
이 영화의 주인공은 중학교 3학년인 시즈쿠. 이 녀석은 책 읽기를 유독
좋아해서 어줍잖은 시편을 끄적거려놓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빌리려던 책을
항상 먼저 빌려가는 '세이지'란 이름을 발견하곤 상상에 빠진다.
알고보니 동년의 학교 친구였다. 이 친구는 바이올린 제작을 배우며
이 분야의 장인이 되길 꿈꾸는 친구다. 그를 만나면서 소녀는 첫사랑에 빠진다.
적지 않은 열병에 시달리며, 자신의 꿈에 대해 고민하고 그때 누구에게나 한번쯤 다가오는
성장통을 겪는다. 이 영화는 꼭 첫사랑의 아련함만을 다루지 않는다.
참 예쁜 성장영화랄까. 꿈에 대해 나름대로는 진지하게
답을 내려 보지만, 주변의 시선은 그저 "공부나 열심히 해" "그래서 대학가겠냐"란
말을 들었던, 이제는 훌쩍 커버린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다.
1995년작이니, 벌써 13년이란 세월이 흐른 영화다.
그 당시의 작은 동네의 골목길, 빨래를 널어놓은 풍경이며
곱게 세일러복을 입은 여중생들의 모습이 행복하게 느껴질거다.
원화를 자세히보면 <빨강머리 앤>와 <미래소년 코난>의
작화를 맡았던 감독의 손길이 느껴지실거다. 너무 화려한 애니메이션이 많은 요즘
오래된 만화영화에서 편안함을 느껴본다.
요 며칠 굉장히 지쳐 있었는데 영화 한편을 보고 나니 기분이 좋다.
긍정의 힘이 뭐 별건가. 영화에서 여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나, 자기 동네에 떠 있는
비행선을 보며, "오늘 좋은 일이 생길것 같다"라고 자기최면을 거는 모습이 그냥 편해보인다.
나에게도 중학교 3학년 시절이 있었고
말끝마다 스포츠형의 머리를 해야 한다며 머리카락을
박박 밀리던 시절, 의상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던 시절, 몰래 사들인 패션잡지를
열심히 읽으며 장 폴 골티에니, 샤넬이니 하는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옷을 보며 찬탄하던때다. 내 지나간 추억이여......
이 영화가 예쁜 건, 청소년들의 꿈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할아버지 때문이다. 앤틱샵을 운영하는
그는 세이지의 할아버지다. 잃어버린 사랑을 잊지 않으며 12시가 되면
마법에 걸리는 시계를 만든다. 그 아래층에선, 세이지는 열심히 바이올린을 제작하며
꿈을 키운다. 소년의 꿈은 그리 만만해 보이진 않는다.
부모의 반대도 많고,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엔 참 착한(?) 대사가 많이 나온다.
절차탁마란 말이 있지만, 사실 이 말은 돌을 쪼개고 연마한다는
말이지 않은가. 시즈쿠에게 운모망간 덩어리를 보여주는 할아버지, 그 틈사이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초록색의 녹주석, 녹주석은 에메랄드의 원석이다.
"자기만의 원석을 찾아내어 연마하라"며 소녀를 격려하고
그녀가 쓴 첫번째 소설의 독자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참 예쁜 영화다.
오히려 요즘 청소년들은 하품을 할지도 모르겠다. 지브리에서 나온 작품들은 하나같이 좋다. <토토로>에서 <너구리대작전><하울의 움직이는 성><마녀 키키>등 기억나는 작품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 영화의 감독 요시후미는 지브리에 입사하기 전 기흉을 앓았는데 업무 중, 육체의 피곤을 이겨내지 못하고 1988년 동맥파열로사망했다. 그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를 기리며 한편의 시를 썼다.
"산 너머, 푸른 바다로, 맑은 하늘로, 부드럽게 빛과 바람과 나무와 물고 땅과 어우러져 편히 쉬십시요"라고. 이 시는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란 노래 속에 그대로 녹아 나온다. 감독의 첫번째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작품의 배경엔 이 노래가 참 많이도 나온다.
삶의 속도에 지치고, 경쟁에 지칠 때,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느껴질 때, 꼭 한번 보기를 바라는 영화다.
"외톨이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외로움을 억누르고 강한 자신을 지켜나가자. 이 길을 계속 걸어가면 그곳으로 갈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좌절하고 싶을 때에도 결코 눈물을 보이지 말자
추억을 지우기 위해, 고향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가지는 않을 거야
컨트리 로드. 내일은 여느 때의 나야"
영화 속, 존 덴버의 노래를 개사해 부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소녀의 목소리로 들리는 노래소리가 좋다. 너무 교과서적인 영화 같지만, 요즘은 이런 영화가 더 끌린다. 깨끗하고 말끔한 영화였다. 더불어 첫 사랑의 추억도 되새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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