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맑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적막속에 드러누운 盛夏의 오후,
틀린 부분을 집요하게 반복하는 저 피아노 소리에
자꾸만 정신이 흩어져 달아난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걸어와 버렸을까..
너울너울 여름날을 날아다니며
존재의 무거움은 모두 지운 채로 눈송이보다 가볍게 날아다니며
다음해를 꽃 피울 새 땅을 찾는 풀씨처럼, 민들레 꽃씨처럼
나도 내 영혼을 꽃피울 새로운 가슴을 찾아 헤매였던 것일까..
다시는 사람에게 내 영혼의 꿈을 놓아두지 않으리라던 맹세도
운명지워진 새로운 사랑을 끝내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일까..
한 사람이 있다.
거리를 지나면 어깨를 부딪히는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그녀가
오늘은 하나의 의미가 되어 내 속으로 걸어들어온다.
나는 느낀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당당한 발걸음..
서성임도 없이, 멈춤도 없이,
지름길로 접어든 그 발걸음..
그녀의 발 앞에서 견고했던 나의 벽은 허물어지고
울타리는 덧없이 스러진다.
때가 되면 돌아오는 밀물처럼
막아 낼 수도 없이 마구 밀려서 온다.
처음엔 발목에 살랑거리다 종아리를 때리고
이내 가슴을 적셔오는 밀물같이 나는 그녀에게 젖어든다.
아..무엇으로 나는 밀물처럼 거세게 밀려오는
그녀의 존재를 막아낼 수 있을까..
끝내 나를 집어삼키고야 말 사랑의 전주곡..
틀리면 다시, 또 틀리면 또 다시,
집요하게 반복하는 저 피아노 소리처럼
사랑도 자기 길을 찾을 때까지
틀리면 다시, 또 틀리면 또 다시 맞을 때까지 계속
이토록 슬픈 반복을 피할 수 없는 것인가..
2005,08,09, le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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