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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식객 - 식객 스토리

쏭이양 2008. 8. 3. 08:17
[특집] 식객 ⑥ - 식객 스토리
<식객>이 거부당한 유일한 맛집
마산 아귀찜의 진짜초가집

신문이나 텔레비전 광고보다 효과가 큰 것이 <식객>이다. 전 국민이 애독하고 전국 맛집의 이름을 등재하기 위한 로비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식객>을 밀쳐내는 기세등등하고 배짱 두둑한 맛집은 있기 마련이다. 마산아귀찜 골목의 원조 ‘진짜초가집’이 그런 경우.

허영만 화백과 <식객>의 이호준 취재팀장의 섭외는 끈질기다. 무작정 찾아가기, 애교작전, 동정심 유발까지 구수할 수 있는 모든 작전을 펼친다. 최후의 방법으로는 버티기가 있다. 손님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아군을 늘리고 취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지난 40년간 대한민국 대부분의 매체를 접한 박연자 할머니의 고집은 완고했다. 할머니는 ‘원조’라는 타이틀도 지겨울 정도라고.

매번 인터뷰에서 같은 말을 해야 하는 곤욕(?)을 치루는 허 화백인지라 그 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국 할머니는 못마땅하신 듯 자리를 뜨셨고, 주방 아주머니가 아귀찜 만드는 과정을 살짝 보여주시는 정도로 마무리됐다.

지금은 사라진 식객의 맛집        
<식객>의 맛집이라고 영원불멸하지는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본래의 맛을 잃어가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고, 저간의 사정으로 영업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식객 제8화 대령숙수 편에 나온 고성군 경북횟집은 명태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음식점을 접었다.

무와 생태를 넣고 소금으로 밑간을 한 경북횟집의 생태 맑은탕은 <식객>에 나오기 전부터 유명했다. 그리 복잡한 요리가 아닌 듯싶지만, 경북횟집만큼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비결은 바로 현지에서 잡은 지방태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동해에서 명태 잡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생태 음식점이 일본에서 수입한 생태로 탕을 끓여내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경북횟집은 아예 음식점을 접어 자존심을 지켰다. 동생인 김정식씨가 운영하는 경상도할매 건어물(033-682-4516)에서 그 쓸쓸함을 달랠 수밖에 없다. 제 22화 매생이의 계절 편에 나오는 갬바우 횟집(061- 867-0180)도 문을 닫았다. 지금은 식당 영업은 안 하고 냉동 매생이 정도만 팔고 있다.
        

준비 중인 식객 이야기
지금 허영만 화백이 준비 중인 <식객>의 소재는 ‘된장’이다. 어떤 이야기가 된장과 얽혀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할지는 비밀. 하지만 벌써 파주 장단콘 마을로 몇 차례 답사를 다녀왔다. 300장이 넘는 사진들이 된장이 익어가는 장독대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된장은 각 집집마다 고유한 전통이 있고, 그 맛 또한 미세하게 다른 만큼 좀 더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맛이 가진 고유한 멋을 살려내는 <식객>인 만큼 된장에 기울이는 노력은 남다르다.

맛없는 맛집 대처법
때론 ‘맛있는 집’이라고 찾아갔건만 ‘맛없는 집’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사실 적잖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하다. 그래서 허화백은 취재 전 “<식객>에 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독자들이 <식객>을 믿고 찾았다 후회하며 돌아서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맛없는 집은 보통 취재만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한다. 때로는 같은 메뉴의 더 나은 집이 있다고 항의하는 독자도 있다. <식객>은 맛뿐만 아니라 맛의 전통과 역사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때로는 최고의 맛집이 아닐 수도 있다. 하기야 사람마다 입맛이 다른데 최고의 맛집이 어디에 있을까. 다만 대중적인 기준에서 ‘맛집’으로 하자가 있는 곳을 소개하지는 않는다.
        

왜 시와 편지인가?
매 권마다 한 편의 시나 편지가 꼬박꼬박 등장한다. 허 화백은 “할 이야기가 없으니까 꺼낸다.”고 하지만, 맛이 가지는 깊이를 전달하기에 딱 들어맞다. 12화 숯불구이 편에서는 정숙의 ‘숯’이라는 시와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를 인용했다. 17화 소금이야기 편에는 정호승 시인의 ‘풍경 달다’가 나온다.

조병화의 ‘해마다 봄이 되면’이나 소동파의 시구도 눈길을 끈다. 특히 허 화백은 함민복 시인을 좋아한단다. 함민복 시인의 ‘한밤의 덕적도’는 55화 식탁 위의 정물화 편에 쓰였다. 그의 글 ‘눈물은 왜 짠가’도 후기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에는 허 화백 특유의 낙천성이 시인에게 해가 될까 염려했지만, 함민복 시인과의 만남은 벌써 3번이 넘었다.

감성적인 편지 글도 빈번하다. 21화 반딧불이 편에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쓴 편지글은 무척 감동적이다. 성찬이 진수에게 쓴 러브레터는 만두의 맛을 빌려 사랑을 전한다. <식객>을 여타의 맛을 소재로 한 만화와 차별화시켜 주는 요소다. 허 화백도 부부싸움을 한 다음날 아침이면, 조금 일찍 일어나 아내에게 짧은 편지를 남기고 나온다고 한다. 저녁에 들어가면 부인의 표정이 바뀌어 있다고.  

서양음식은 다루지 않는다?
식객에는 서양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기본적으로 심도 있는 취재가 이뤄져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아직 우리의 제철 음식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허화백이 서양 요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물이 없는 요리는 별로”라고 말하는 그다. 특히 퓨전 요리에 대한 그의 경계는 삼엄하기 그지없다. 그는 퓨전음식은 음식에 장난을 친 것 같다고 말한다. 음식 본래의 맛, 제철에 먹는 맛이 그가 찾는 진정한 맛이다.
        

식객 저장고
식객에는 완성하고 세상에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음력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춰 연재하려다 매번 때를 놓친 까닭이다. 올해 4월 초파일에는 꼭 연재하리라고 다짐했다만 약속할 수는 없다. 배경은 대구의 비구니 스님들이 모여 있는 사찰, 백흥암이다. 비구니 스님이 된 딸과 어머니의 이야기다. 일 년에 딱 한 차례 절에 외부인이 들어가는데, 출가한 딸과 어머니가 ‘속세의 인연’을 모른 척하며 속앓이를 한다는 설정이다. 미나리로 두 사람의 관계를 엮어 갈 생각이란다.

가장 아쉬운 <식객>
제2화 고추장굴비 편은 야심차게 기획했지만 독자들 반응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초창기 신문 연재 일정에 맞춰 5회로 정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웃 간에 먹을거리를 나누며 정을 돈독히 한다는 내용인데, 짧게 연재되다 보니 작가의 의중이 충분히 전달될 시간이 없었다. 10~20회 정도 스토리로 설정했다면 좋은 반응을 얻지 않았을까 싶지만, ‘흥행’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