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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다비드 -마라의 죽음

쏭이양 2009. 1. 13. 06:50

Jacques-Louis David
[French Neoclassical Painter, 1748-1825]




[마라의 죽음]The Death of Marat
1793, Oil on canvas, 63 5/8 x 49 inches (161.9 x 124.7 cm)
Musées Royaux des Beaux-Arts, Brussels, Belgium



1793년 7월 13일 피부병 때문에 자주 목욕을 하던 마라가 자기 집 욕실에서 샤를로트라는 25세 된 시골처녀에게 척살(刺殺)당한다. 지롱드당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샤를로트는 자코뱅당의 지도자인 마라가 지롱드당을 공격하는 데 앞장을 서고 있었다는 이유로 그를 암살한 것이다. 그 3일 후 샤를로트는 처형된다. 혁명의 광기가 어려 있던 시기의 일들이었다.

마라는 정치논평신문 《인민의 벗》을 창간하여 스스로 인민의 친구임을 자처하고 있었다. '저는 아주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당신이 제게 호의를 베풀어 주실 이유가 충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글이 적힌 메모를 들고 찾아온 샤를로트를 마라가 아무런 의심없이 만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어떻게 샤를로트가 욕실 안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마라의 혁명동지였던 다비드는 사건이 일어난 지 3일 후에 의회로부터 의뢰를 받아 3개월 만에 이 그림을 완성하였다.

욕실 안은 아무런 장식도 가구도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상아 손잡이가 달린 피묻은 칼이 놓여 있을 뿐이다. 비명에 간 청렴결백한 혁명가의 생활이 부각되어 있다. 잉크병이 놓인 낡은 나무상자에 '마라에게, 다비드가 바친다(A MARAT, DAVID)'는 글만이 외로운 비문처럼 적혀 있다. 그의 한 손에는 면회를 요청할 때 샤를로트가 가지고 온 메모지가 들려 있고, 밑으로 축 처진 다른 손에는 깃털펜이 쥐어져 있다.

그림 속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교적 순교자를 연상시킨다. 오른쪽으로 점점 밝아져 가는 배경은 마치 하늘의 영광이 죽어가는 성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다비드는 이런 그리스도교적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거의 알아차릴 수 없도록 모든 것을 뛰어난 솜씨로 처리하였다. 다비드는 후에 나폴레옹의 궁정화가가 되어 한때는 화려한 생활을 하였으나,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에는 벨기에로 도피하여 외롭게 생활하다가 결국 그 곳에서 생을 마쳤다.

샤를로트 코르데 by  Paul-Jacques-Aimé Baudry

 

While Corday was still a young girl, her mother passed away as did her older sister. Her father, unable to deal with the grief, sent Corday and her younger sister to the Caen Abbaye-aux-Dames While there Corday had access to the abbey's library where she first encountered the writings of Plutarch, Rousseau and Voltaire.[1] After 1791, Corday lived with her cousin, Madame Le Coustellier de Bretteville-Gouville in Caen. Corday and Bretteville would become close companions and Charlotte would soon be the sole heir to her cousin's fortune.[2]

 

장폴 마라(Jean-Paul Marat, 1743년 5월 24일 -1793년 7월 13일)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인으로 프랑스 혁명에서 급진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정치가로 잘 알려진 내과 의사, 철학자, 정치 이론가, 과학자이다. 그의 기고문은 격렬한 성격과 강경한 태도로 새 정부 편에 서서 "혁명의 적"과 사회의 극빈층을 위한 기본적인 개혁을 다룬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완고한 끈질김, 일관된 목소리와 초인적이고 예언적인 정신력은 그를 민중이 신뢰하게 만들었고, 민중과 급진적인 자코뱅 당의 다리 역할이 되어 1793년 6월 권력을 얻게 하였다. 짧은 2달 동안 6월에 지롱드 파가 차츰 몰락하게 되면서 마라는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프랑스의 세명의 요인이 되었다. 이후 지롱드 당 지지자인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자택 욕조 안에서 찔려 죽음을 맞았다.

File:Charlotte corday.jpg

샤를로트 코르데 Charlotte Corday (1768–1793) by François Séraphin Delpech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7~8쪽, 김영하, 1996. 8, 문학동네 中에서 발췌

   1793년에 제작된 다비드의 유화, '마라의 죽음'을 본다. 욕조 속에서 피살된 자코뱅 혁명가 장 폴 마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머리에는 터번처럼 생긴 수건을 두르고 있고 욕조 밖으로 늘어뜨려진 손은 펜을 쥐고 있다. 흰색과 청색 사이에 마라가 피를 흘리며 절명해 있다.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정적이다. 어디선가 레퀴엠이 들려오고 있는 것만 같다. 그를 찌른 칼은 화면 아래?에 배치되어 있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그 그림을 모사해보았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마라의 표정이다. 내가 그린 마라는 너무 편안해 보여서 문제다. 다비드의 마라에게선 불의의 기습을 당한 젊은 혁명가의 억울함도, 세상 번뇌에서 벗어난 자의 후련함도 보이지 않는다. 다비드의 마라는 편안하면서 고통스럽고 증오하면서도 이해한다. 한 인간의 내부에서 대립하는 이 모든 감정들을 다비드는 죽은 자의 표정을 통해 구현했던 것이다.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의 시선은 가장 먼저 마라의 얼굴에 머문다. 표정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시선은 크게 두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쪽 팔에 들려진 편지로 시선이 옮겨지거나 아니면 욕조 밖으로 비어져나와 늘어진 다른 팔을 따라간다. 죽은 마라는 편지와 펜, 이 두 사물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거짓 편지를 핑계로 접급한 테러리스트에게 살해된 마라는 답장을 쓰려다 살해되었다. 마라가 끝까지 움켜쥔 펜이 차분하고 고요한 이 그림에 긴장을 부여한다. 다비드는 멋지다. 격정이 격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건조하고 냉정할 것. 이것은 예술가의 지상 덕목이다.

   마라를 죽인 샤를로트 코르데라는 여자도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지롱드 당의 청년 당원이었던 샤를로트 코르데는 자코뱅의 마라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거짓 편지를 미끼로 접근, 목욕중인 마라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1973년 7월 13일의 일이었고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사건 직후 체포된 확신범 코르데는 나흘 만인 7월 17일 목이 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