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에 몇 개예요?" 붕어빵을 살 때마다 묻는 말이다. 다른 곳보다 한 개라도 덜주면 '거 참 비싸네'
하다가도 달짝지근한 팥 앙금을 맛보고 나면 이 가격에 이만 한 간식도 없지,싶다. 옛날에는 국화빵이나
붕어빵을 풀빵이라고 불렀다. 팥 앙금도 못 넣고 도배풀처럼 밀가루만 묽게 반죽해 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의 붕어빵은 한 개의 열량이 200kcal 정도라니 한 두개만 먹어도 밥 한 공기와 맞먹는 셈이다.
똑같은 틀에 부어 찍어내는 붕어빵이라도 맛은 가게마다 천차만별, 그 많은 붕어빵 노점 가운데 원조는
과연 어디일까? 가장 유력한 것은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설이다. 일본에도 '타이야키'라는 물고기 모양
빵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일제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는 타이, 즉 도미가 가장 친근한 생선이다. 19세기 말부터 3대째 타이야키를 만들어 가업을
잇는 가게가 있다니 그 역사는 꽤 오래된 듯하다. 게다가 일본에서도 '도미빵에는 도미가 없다'는 말을
쓴다고 하니 우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또 한가지는 한국전쟁 이후 좋아하는 생선을 맘껏 먹지 못한 어느 청년이 발명했다는 설이다.
가난 때문에 수제비만 먹던 그가 밀가루 반죽을 물고기 모양으로 구웠는데 이것이 붕어빵의 시초라는 것이다.
그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붕어빵 틀을 만들어 온 서일기계 창업주 고(故)박광연 씨다.
그는 대장장이였기에 붕어빵 틀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실제로 연탄식 붕어빵 기계를 만들어 쌀 한 가마
정도의 가격(당시 12원 정도)에 판매했다고 한다. 붕어빵 기계는 당시 막막한 현실 앞에 좌절했던 서민들에게
든든한 생계 밑천이 돼 주었다. 박광연 씨가 세상을 뜬 뒤에는 아들 박동우 씨가 붕어빵 틀 만드는 사업을
물려받아 오늘날까지 건실하게 꾸려가고 있다.
나라 살림이 어려워지면 붕어빵 장수가 급증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붕어빵의 전성기는 한국전쟁 직후와
IMF 시절이었다. 원조가 어디든 따뜻한 붕어빵이 추운 겨울에 주머니까지 가벼운 서민들의 영양 간식 노릇을
톡톡히 해 온것만은 확실하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의 붕어빵 틀과 기술이 미국,중국,호주는 물론 일본에까지
수출되고 있다니 붕어빵 종주국은 한국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 글 김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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