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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녀 트랜스 지방을 탈출할수 있을까?

쏭이양 2008. 4. 30. 04:24
“아침에는 캐러멜 마키아또 한 잔과 바나나 머핀을 사들고 회사로 향해요. 간단히 요기를 하고…, 점심은 보통 나가기 귀찮으니까 구내식당에서 대충 때우죠. 저녁에는 친구들과 약속이 생기면 거하게 먹으러 패밀리레스토랑에 가요. 고소한 빵과 치킨샐러드, 바비큐와 감자튀김까지 배가 터질 정도로 먹죠.”

평범한 회사원 한지민 씨의 고백. 지갑을 들고 고르기만 하면 되는 먹거리가 주변에 널려있다. 처음에는 간편함과 신속함에 매력을 느꼈고 나중에는 ‘달콤바삭고소’한 맛에 빠져들었다. 자의든 타의든 이제 그의 하루 식단은 온통 기름기로 얼룩져있으니 ‘된장녀’ 한씨의 실체는 ‘지방녀’인 셈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 한씨는 케이블TV에서 영화 ‘집으로’를 봤다. 그리고 한 장면에서 와락 웃음을 터뜨렸다. 일곱 살짜리 상우가 온갖 손짓발짓으로 ‘프라이드치킨’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표현했건만 외할머니가 정성껏 준비한 닭은 ‘물에 풍덩 빠뜨린’ 백숙. 70년이라는 세대차를 극복하는 일이 결코 녹록지는 않겠지만 이들의 입맛은 70년을 넘어 수천광년쯤 떨어져있는 듯 하다.

삼겹살과 수육, 팝콘과 삶은 옥수수, 감자튀김과 찐 감자 앞에서 사람들은 어느 쪽을 선택할까. 너무 당연한 질문일까. 한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기름지고 자극적인 맛보다는 찌고 삶고 구워서 만든 담백한 맛에 익숙하다. 튀긴 음식은 손쉽다. 그만큼 중독성도 강하다. 사람들의 입맛이 차츰 기름기에 길들여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시점이다.


“트랜스지방 어떻게 생길까”

액체 기름에 재료를 튀기면 씹는 맛이 떨어지고 모양도 잘 안 살아난다. 또 쉽게 산패가 일어나기 때문에 한번 사용한 기름은 버려야한다. 산패는 기름이 공기와 오래 접촉했을 때 산성으로 변하며 냄새와 맛이 나빠지는 현상이다.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고 했던가. 유지업계는 식물성 기름에 수소를 넣어 딱딱하게 굳힌 쇼트닝과 마가린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트랜스지방이 탄생했다.

트랜스지방의 분자구조는 매우 안정해서 상온에 둬도 곰팡이가 안 생기고 여러 번 다시 써도 산패하는 속도가 더디다. 또 과자나 빵에 스펀지 모양의 조직을 만들어 씹는 느낌을 부드럽게 한다. 음식의 모양도 잡아주는데, 도넛을 손으로 잡아도 부스러지지 않는 까닭은 트랜스지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지방은 식용유를 정제하는 과정이나 식물성 기름을 고온으로 가열할 때도 생긴다. 한국식품연구원 윤석후 박사는 “튀길 때 기름의 온도가 높을수록 튀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트랜스지방이 많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며 트랜스지방의 해악이 속속 밝혀졌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었던 프레온가스가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드러나며 사용을 멈춘 것과 마찬가지다. 분당 서울대병원 심장센터 최동주 교수는 “트랜스지방이 몸에 쌓이면 혈액 속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며 심장병과 고혈압을 일으키고 당뇨에 걸릴 확률도 커진다”고 말했다. 또 영양분과 노폐물이 오가는 통로인 세포막에 변형이 생겨 혈관이 약해지고 면역력도 떨어진다.

실제로 2005년 2월 미국의 한 환경운동가가 맥도날드의 치킨과 감자튀김에 들어있는 트랜스지방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다. 맥도날드는 결국 미국 심장학회에 700만 달러를 기부하며 혐의를 인정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미국인 한명이 매년 섭취하는 트랜스지방은 2.1kg. 이는 고스란히 심장마비와 뇌졸중으로 이어진다.


“하루아침에 노트랜스라니!”

이제 막 트랜스지방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은 한씨. 의식적으로 토스트 대신 과일샐러드를 만들려고 마요네즈 병을 집어든 순간 멈칫했다. 조간신문 1면 하단에 ‘전제품 트랜스지방 0g, 영양성분 전면표시 먼저 시작합니다’라는 제과업체의 광고를 본 까닭이다. 갑자기 마요네즈 대신 불포화지방이 풍부하다는 올리브유 쪽으로 손이 갔다.

우리나라 식약청은 올해 12월부터 빵이나 과자, 면류에 트랜스지방 함량을 표시하도록 식품표시기준을 개정했다. 식약청 영양평가팀 김종욱 연구관은 “소비자의 알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지방은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으로 나눠 표시하고 전에 없던 콜레스테롤이나 인위적으로 첨가하는 당류도 항목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롯데제과와 오리온은 지난달부터 트랜스지방 함량을 제품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CJ는 4년간의 연구 끝에 효소로 지방의 구조를 바꿔 트랜스지방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삼양사도 트랜스지방을 낮춘 쇼트닝과 마가린을 생산해 제과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2005년 미국은 트랜스지방을 하루 2g 이하로 섭취하라고 권했으며 2006년 1월부터는 모든 가공식품에 트랜스지방 함유량을 표시하도록 했다. 마가린을 발라 구은 식빵 한 장에는 2.8g의 트랜스지방이 들어있으니 토스트 한쪽만 먹어도 하루치 트랜스지방 섭취량을 웃도는 셈이다. 한술 더 떠 뉴욕시는 올해 7월까지 트랜스지방이 들어있는 쇼트닝이나 마가린을 모든 음식점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한씨가 살고 있는 강남구 대치동도 머지않아 뉴욕처럼 변할 것이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강남을 ‘노트랜스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원철 보좌관은 “강남구에서 트랜스지방을 금지하는 조례가 통과되면 서울시는 물론 국회 결의안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패스트푸드업체 말 믿을 수 있을까”

패스트푸드업체의 대응도 신속하다. 맥도날드는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을 모두 낮춘 획기적인 대체유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고 KFC도 작년 5월부터 식물성 팜올레인유를 튀김 기름으로 사용해왔다고 밝혔다. 최근 던킨도넛은 자사 제품의 트랜스지방 함량을 조사한 뒤 그 결과를 공개했다.

하지만 무늬만 식물성인 팜유나 팜올레인유의 포화지방 함량은 40%를 넘고,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을 모두 줄인 대체유가 예전의 맛을 재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안전하다’는 업체의 말만으로는 왠지 석연치 않다. 유리한 정보만 공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떨칠 수 없다.

과자업체는 올해 1월부터 트랜스지방 함량을 자발적으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패스트푸드업체는 소비자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한참을 헤맨 뒤에야 겨우 영양성분표를 찾을 수 있고 이마저도 없는 업체가 수두룩하다.

크리스피크림도넛의 경우 매장이나 홈페이지에서 영양성분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다. 달콤함 뒤에 진실을 감추고 있는 셈이다. 스타벅스 홈페이지에는 열량 정보만 있다. 미국 스타벅스 본사가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의 함량까지 자세히 보여주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패스트푸드나 테이크아웃 커피는 굳이 트랜스지방 함량을 표시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즉석에서 가공하거나 만들어 파는 반제품이라는 이유로 식품표시기준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캐나다가 모든 가공식품에 트랜스지방 함량을 표시하는 것과는 엄연히 차이가 난다.

따라서 이들 업체의 메뉴판이나 웹사이트에서 트랜스지방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명확한 정보를 얻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환경정의 시민연대 윤광용 부장은 “패스트푸드 업체는 식품위생법에 휴게음식점으로 분류돼 있어 트랜스지방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라며 “현행 식품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내가 중독된 걸까”

삼양웰푸드의 카놀라유 생산 공정. 트랜스지방을 쫙 뺀 기름이 아니면 앞으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삼양웰푸드 기술연구소 이진학 팀장은 “기름에서 트랜스지방을 서서히 줄여나가는 동시에 원래의 맛을 유지하는 일이 관건”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트랜스지방을 쏙 빼더라도 여전히 바삭거리는 감자튀김을 원할 테니까. 유지업체가 고체 상태이면서도 트랜스지방이 없는 기름을 개발하는데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쇼트닝에 튀긴 음식은 왜 바삭거릴까. 쇼트닝은 체온 부근인 36.5℃에서는 거의 녹아 액체로 변하고 온도가 내려가면 다시 고체로 돌아온다. 즉 씹을 때 입안에서 기름이 녹아나오며 고소한 맛이 나고, 상온에서 식더라도 기름이 굳어지며 공기 중의 수분을 차단해 눅눅하지 않게 한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저자인 후델식품건강연구소 안병수 소장은 국내 유명과자회사에 근무했을 때의 경험을 회상하며 “입맛이 기름기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삭하고 고소한 맛에 익숙해지면 자연 식품의 은근한 맛은 심심하게 느껴진다.

안 소장은 “일단 트랜스지방이 몸에 들어오면 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 즉 반감기가 51일이며 이는 반감기가 18일인 필수지방산과 비교해 긴 시간”이라고 말했다. 매일 트랜스지방을 꾸준히 먹는다면 1년 뒤 몸속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트랜스지방이 쌓인다는 얘기다.

한씨는 결심했다. 예전에 조미료를 끊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기름기를 끊어보겠다고. 처음에는 입맛에 좀 안 맞겠지만 담백한 맛에 길들여지면 체중 걱정도 덜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이 들어있는 생선을 자주 구워먹고 심심할 때마다 호두도 까먹기로 했다. 튀김을 할 때는 신선한 기름에서 재료를 단시간에 익혀 먹을 생각이다. 한씨는 어렸을 때 마가린에 뜨거운 밥을 비벼 먹던 추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있는 그대로 보여 주세요”

얼마 전 식약청은 과자에 들어있는 식품첨가물이 아토피피부염과 직접적인 상관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느 한 요인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명쾌하게 밝히는 일은 이처럼 쉽지 않다. 트랜스지방도 마찬가지다. 식약청은 하루에 먹어도 되는 트랜스지방 허용기준치조차 아직 정하지 못했다.

트랜스지방 ‘제로’의 기준도 애매하다. 미국의 경우 식품당 함량이 0.5g 이하면 트랜스지방 0으로 표시한다. 캐나다는 트랜스지방을 0.1g까지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안병수 소장은 “수많은 식품업계의 이해가 얽혀있기에 성급한 결정은 독단일 수도 있지만 트랜스지방이 단 0.01g이라도 들어있다면 있는 그대로 표시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0.5라는 숫자는 수학에서도 결코 ‘버림’할 수 없기 때문에 ‘제로’가 될 수는 없다. 앞으로 식약청이 국민의 건강을 위해 확실한 기준을 세운다면 한씨의 트랜스지방 탈출기도 한층 수월해지리라.


‘기름’ 아는 만큼 보인다

슈퍼에 가면 콩기름도 있고 참기름, 올리브유, 카놀라유(유채꽃 씨앗에서 추출한 기름)도 있다. 보기에는 다 같은 식용유인데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식용유란 말 그대로 음식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기름이다. 1910년경 쌀겨기름을 만드는 유지공장이 들어서면서 식용유의 대량생산시대가 열렸다. 그전까지는 가정이나 동네에서 직접 짜먹던 참기름이나 들기름, 고추씨기름이 전부였다.

식용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콩기름. 샐러드에 향기를 더해주는 올리브유, 포화지방 함량이 낮은 카놀라유, 노화를 늦추는 효과가 있는 포도씨유도 있다.

기름을 고를 때는 압착유인지 정제유인지 눈여겨 보자. 압착유는 말 그대로 큰 압착기로 눌러짠 기름인데 참기름이나 들기름,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가 해당된다. 자연 상태 그대로라 영양 성분이 풍부하지만 가열을 하면 연기가 많이 난다.

반면 여러 단계의 화학처리를 거친 기름이 정제유다. 콩이나 현미, 옥수수는 눌러 짜는 것만으로는 기름을 많이 얻기 힘들기 때문에 원료를 부숴 기름 성분을 추출한 뒤 여과와 중화, 탈색, 탈취 과정을 거친다. 이때 영양소가 파괴될 뿐 아니라 200℃가 넘는 고온의 탈취 과정에서 트랜스지방도 생긴다.

콩기름의 원래 빛깔은 맑고 투명하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맑고 고운 빛깔을 띨수록 색소처리를 많이 했다는 뜻. 결국 기름기 많은 음식은 피하고 먹더라도 필수지방산이 들어있는 압착유를 선택하는 편이 좋다. 정제유를 사용할 때는 낮은 온도에서 짧은 시간 동안 조리해야 한다.